가수 하춘화씨는 KBS상상플러스에 출연해 1977년 이리역 폭팔사고 당시 고이주일씨가 폭파사고로 두개골이 함몰된 경황 중에도 나를 업고 뛰어갔다며, 특히 벽을 넘을 때는 먼저 넘어간 이주일씨가 지신의 머리를 밟고 내려오라고까지했다고...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답니다.

고 이주일이 암으로 타계하기전 2002년에 한기자가 분당자택으로 찾아가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들을수있었다고 합니다. 고 이주일씨가 전한 내용들은...아래와 같다고합니다.

"나는 15세 연하인 그녀를 공주님처럼 모셨다. 지역 깡패들이 그녀에게 접근하려면 우선 나부터 상대해야 했다. 이리역 폭발사고 때 나는 머리가 깨진 상태에서도 그녀부터 찾았다. 내 인생에 두 사람을 꼽으라면 하춘화와 (축구감독) 박종환이다."

고 이주일이 1970년대 최고의 인기스타 하춘화를 만난 것은 1974년. 고인은 당시 지방유랑 극단에 몸을 맡긴 채 충무로 언저리를 기웃거릴 때였다. 물론 70년대 말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나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오르기 훨씬 전의 일이다.

"서울 국도극장에서였다. 당시 사회자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내가 대타로 나섰고, 그때 무대 주인공이 김추자와 쌍벽을 이뤘던 하춘화였다. 그날 이후 나는 하춘화 쇼의 단골 사회자가 됐다. 적어도 500회 이상 따라다녔다."

다음은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고인의 생생한 증언. "정말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오후 9시 무렵, 이리역에서 100미터 떨어진 삼남극장에서 막 오프닝 멘트를 끝내고 돌아온 순간이었다. '꽝'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극장 지붕이 모두 날아가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하춘화씨부터 찾았다. 불길이 치솟는 난로 옆에 그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나도 머리에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지만 무조건 그녀를 업고 뛰었다. 그녀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극장 밖으로 나오자마자 쓰러졌다. 이때 14명이 죽었고 나는 뒷머리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하춘화씨는 선생님에게 해준게 아무것도 없다며...선생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것이라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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