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요제 대상수상한 B2

멤버로는

김예지(보컬), 이정임(베이스), 양송이(기타), 이나래(건반), 신선미(드럼), 이리라(퍼커션)

김지원(코러스), 차은실(코러스), 심혜진(코러스), 장은희(코러스)

레게풍의 Y라는 노래는 실연당한 여자의 일주일을 노래한 곡이다.

특히 렙부분이 맘에 든다.

과연 인기가수로 성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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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 정상선언 발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4일 민족경제 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한 경제협력사업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북한 해주와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통과, 경제특구 건설,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추진키로 했다

노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이날 오후 1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10개항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년 남북 정상 선언)에 서명했다.

두 정상은 선언문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남북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를 협의키로 해 사실상 정상회담 정례화에 합의했다. 선언의 구체적 이행을 위해 11월 서울에서 제1차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키로 했다.

두 정상은 또 한반도 정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해 남북한과 미국 등을 포함한 3~4개국 정상이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을 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지역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평화 수역화’하는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다음달 평양에서 남북국방장관 회담을 열기로 했다.

선언은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와 문산~봉동간 철도화물 수송, 통행·통신·통관 등 ‘3통(通)’에 대한 제도적 보장조치를 조속히 완비하기로 했다.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공동 이용을 위한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하기로 했다. 북한 남포와 안변지역에 개성공단식 형태의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고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에 대한 협력사업도 진행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남북경협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 차관급이 위원장인 ‘남북경제협력추진위’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남북 정상은 백두산 관광 실시와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경의선을 이용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경기 남북 응원단 참가, 금강산면회소 쌍방 대표 상주 및 상시 상봉 추진에도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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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전문)


쌍방은 우리민족끼리 뜻과 힘을 합치면 민족번영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 나갈수 있다.확신을 표명하면서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남북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고수하고 적극 구현해 나간다.

남과 북은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중시하고 모든 것을 이에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이행해 나가려는 의지를 반영하여 6월 15일을 기념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남북관계 문제들을 화해와 협력, 통일에 부합되게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를 통일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확대와 발전을 위한 문제들을 민족의 염원에 맞게 해결하기 위해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어떤 전쟁도 반대하며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간 회담을 금년 11월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위한 투자를 장려하고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하며 민족내부협력사업의 특수성에 맞게 각종 우대조건과 특혜를 우선적으로 부여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을 빠른 시일안에 완공하고 2단계 개발에 착수하며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을 시작하고,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반 제도적 보장조치들을 조속히 완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를 공동으로 이용하기 위해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해 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 경제협력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현재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6. 남과 북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빛내기 위해 역사, 언어, 교육, 과학기술, 문화예술, 체육 등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백두산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2008년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를 처음으로 이용하여 참가하기로 하였다.

7. 남과 북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며 영상 편지 교환사업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는데 따라 쌍방 대표를 상주시키고 흩어진 가족과 친척의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 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동포애와 인도주의, 상부상조의 원칙에 따라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8.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하기로 하고, 제 1차회의를 금년 11월중 서울에서 갖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들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들을 협의하기로 하였다.

2007년 10월 4일 평 양 대 한 민 국 대통령:노무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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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저마다의 감흥이 있을 것이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음악이란 내 삶이요, 내 벗이요, 또한 나 자신이다.

나의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어 준 한사람이 엔니오모리꼬네였다.

엔니오모리꼬네의 내한공연이 있다는 소식은 진작에 들었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많은 고민 끝에 뒤늦게 표를 예매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 심장을 울렸던 음악을 그리고 그 감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찬란한 순간을 기대했다. 음표에서 퍼져 나오는 음악이 나를 곡의 세계로 인도하고 나는 음악을 온 몸으로 느끼며 하나가 되는 것을 기대했다. 엔니오모리꼬네의 음악은 나의 상상력을 맘껏 발휘하도록 나를 부추기는 자극제 같은 것이다. 눈을 감고 모든 신경세포가 귀에 집중하고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을 느끼고 있노라면 나의 피는 뜨겁게 달궈지고 심장의 아래쪽에서 움찔거리는 떨림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맑은 영혼의 결정체가 피어난다. 잡히지 않는 가치로운 진동이여라. 이것이 엔니오모리꼬네 음악의 가치이다.

공연 날 느꼈던 감동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공연 날처럼 짧은 시간동안 엔니오모리꼬네 음악을 신경을 곤두세우며 악기 하나하나의 음을 들어보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순간 느끼는 감동을 즐겼을 뿐 그 음악을 완성시키는 여러 가지 악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로만 즐기는 음악보다는 눈과 귀, 두 가지 감각을 일치시키며 느끼는 음악은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기분 좋은 분을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것이 많은 그는, 싱그러운 미소와 따뜻한 눈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다. 대화가 끊이지 않게 화제를 바꿔가며 작은 것에도 신경써주는 세심한 배려가 기분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입가에 미소를 짓는 내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2007년 10월 3일... 특별하고 신선한 경험..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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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Che Guevara, 1928년 6월 14일 ~ 1967년 10월 8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문화어: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이다.

 

생애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사회주의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1952년에 볼리비아인민운동에 참가하여 외국자본의 국유화를 위하여 투쟁하였으며, 1953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학대학을 졸업한 후 과테말라로 가서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을 하다가 1954년 멕시코로 망명하였다. 체 게바라는 1955년, 망명지 멕시코에서 자신처럼 망명하던 쿠바 사회주의 혁명가들과 알게 되였으며 그 때로부터 쿠바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투쟁하였다.

1956년 12월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혁명가들과 함께 《그란마》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한 후 친미 독재정권이자 미국의 꼭두각시인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쿠바혁명에 참가하며 대대를 이끌어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카스트로는 다른 좌파 혁명가들과 함께 벌인 사회주의 혁명운동에 실패하여 감옥살이를 했었는데-이때 피델 카스트로는 판사 앞에서 역사가 나중에 나를 다시 평가할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한다.-체 게바라등의 동지들의 참여로 다시한번 혁명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바티스타 독재정권은 미국의 꼭두각시요 부패한 독재정권이어서 민중들의 외면속에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쿠바혁명 승리후 쿠바 공산당쿠바 혁명정부의 중요직책에 있으면서 쿠바혁명에서 얻은 것들을 지키며 혁명을 더욱 전진시키기 위하여 정력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쿠바혁명승리후 얼마간 아바나의 라 까바니아요새수비대 사령관으로 있다가 산업발전을 조종하는 책임자로 있었으며 동시에 토지개혁의 준비에 참가하였다. 1959년 11월∼1961년 2월에 쿠바국립은행총재, 1961년 2월부터 쿠바산업부장관도 함께하였으며 1962년에 쿠바통일혁명조직 전국지도부 및 비서국에서 일했다. 하지만 그는 쿠바에서 많은 일들을 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났다. 즉, 1965년 4월부터 쿠바를 벗어나 볼리비아로 투쟁무대를 옮겨 바리엔토스 정권을 상대로 게릴라전으로 투쟁했으나, 1967년 10월 9일 미국이 가담한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잡혀 총살당했다.그의 시체는 30년후 발굴되어 그가 혁명가로 활동했던 쿠바에 안장되었다.

Ernesto Guevara de la Serna
June 14, 1928October 9, 1967
Image:Famousphotoche-cropped.jpg
Alberto Korda's famous photograph


1950년대에 그가 공부를 마치기 전에 다닌 여행이야기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로 2004년에 출시된 바가 있다. 그에게 오토바이 여행은 관광이나 배낭여행이 아닌, 억압받고 가난한 그리고 한센병으로 고통받는 인디오들과 민중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기회였다. 물론 여행에서 쌓은 경험이 사회주의 혁명의식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의 민중에 대한 사랑은 현재 민중들이 체 게바라를 목수의 아들답게 민중들과 동고동락한 예수 그리스도에 빗댈정도로 존경받게 한다


비판적시각

체 게바라는 혁명가로서는 활약했지만, 취약한 점도 있었다. 그는 볼리비아 혁명당시 사상적 동지인 볼리비아공산당의 지원과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체 게바라(Che Guev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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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민, 영어 전문가 한나래씨와 11월 웨딩마치
출생 : 1973년 (서울특별시)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교육대학원 영어
경력 : 한국사이버대학 실용영어과 교수
Mnet 1기 VJ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알게되었죠...
 
영어책도 내시고... 능력있으신분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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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 무어가 젊음을 위해 4억 6천만원짜리 성형수술을 감행했습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45세인 데미 무어가 1주일 전 5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자면 약 4억 6천만원을 들여서 전신 성형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는데요.

이 신문은 또 무어가 심각한 성형중독에 걸렸으며 늙는 것을 두려워해 돈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난했구요.

16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탓인지 연하인 남편 '애쉬튼 커처'와 살면서 늙어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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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크라운제이가 ‘300여명의 여자를 사귀었다’는 자신에 대한 괴소문을 바로 잡았다.

지난 3일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코너에 클래지콰이호란, 알렉스와 함께 출연한 크라운 제이는 근황을 이야기 하던 중 MC인 김구라의 “300여명의 여자를 사귀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크라운 제이는 이같은 질문에 당황한 기색도 없이 “1집 앨범 수록곡인 ‘케빈은 바람둥이’라는 곡으로 활동하던 중 ‘철없던 시절 바람둥이였다’고 말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며 “지금까지 10~20여명의 여성을 사귀어봤다”고 밝혔다.

이어 “철없던 시절 바람둥이가 아닌 남성이 어딨냐”며 “여기 있는 분들도 다 그렇지 않았냐”며 재치 있게 분위기를 띄웠다.

또한 그는 “이제껏 교제한 여성 중 가사에 활용한 여자친구는 단 한 명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날 ‘황금어장’의 또 다른 코너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가수 김장훈이 ‘기부천사’이미지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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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림이 MBC 표준FM(95.9MHz) ‘박경림의 심심타파’를 떠난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4일 “10월 15일 가을 개편을 맞이해 박경림이 ‘심심타파’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후임을 물색중이다”고 전했다.

박경림의 소속사 관계자는 ‘심심타파’ 하차와 관련 “결혼 후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심야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너무 무리라고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박경림 본인이 가장 아쉬워하지만 행복한 신혼 가정을 꾸림과 동시에 휴식 차원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후임 DJ가 결정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소속사 관계자는 “워낙 ‘심심타파’에 대한 애정이 많아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는 열성을 다할 것”이라고 프로그램에 대한 성원을 당부했다.

이로써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 2005년 5월부터 ‘심심타파’로 심야 청취자들과 만나온 박경림은 2년 5개월만에 라디오 스튜디오를 떠난다.

한편 박경림은 5일 방송되는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에 출연, 첫날밤 사연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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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필칭 '된장녀'와 못 말리는 '바람둥이 여성'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첫 방송된 케이블채널 올리브의 '악녀일기'는 신용카드로 한 달에 800만원을 지출하는 '명품족' 이칸희와 심심풀이 삼아 남자를 유혹해 시시때때로 애인을 바꾸는 안민애의 실제 체험담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다.

두 여성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행태는 '천민자본주의사회'로 불러 마땅할 2007년 한국의 그늘진 모습을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다.

이들이 가진 '소비'와 '사랑'에 대한 관념은 지극히 즉물적이고, 말초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자기보다 못한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 이는 1980년대 이후 태어나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박해에서 해방돼 '말할 것은 말하고, 누릴 것은 누리고 산' 세대가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방송을 본 시청자 대부분은 "대체 이런 드라마를 왜 방송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런 애들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정말 꼴사납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는 "분명 존재하는 현실이다.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들 삶의 방식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한 소재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담아낸 올리브의 '악녀일기'는 최근 불붙고 있는 '케이블방송의 과도한 선정성' 논쟁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있다.


논란을 부르고 있는 드라마 '악녀일기' ⓒ 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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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의 의미

Story 2007. 10. 2. 19:20


10월 3일은 우리 국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개천절 (開天節)입니다.  개천절 이 시작된 것은 국조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에서 1900년 1월 15일 교문(敎門)을 다시 열면서 단군조선을 건국하였음을 기리는 날로 정하여 경하식을 거행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개천절  행사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식민지배하의 상황에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상해임시정부에서도 이날을 국경일로 정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정부가 계승하여 음력 10월 3일에 지내던 행사를 양력 10월 3일로 바꾸어 지금의  개천절 이 되었습니다.

 
 
  개천절 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단군성조께서 조선을 개국한 날이기에 이 날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개천절 이 단군성조께서 나라를 열기 훨씬 이전부터 있어 왔음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단군왕검께서 조선을 개국하시기 이전부터 동이족의 역사는 존재했었는데, 환국(3301년), 배달국(1565년), 단군조선(2096년)으로 이어져 내려온 시대를 우리는 삼성조 시대라 이야기합니다.
 
 바이칼 호수지방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땅을 3301년 동안 7대 환인천제께서 다스렸던 나라의 이름이 환국(桓國-광명의 나라)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밝음을 숭상하며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천손민족(天孫民族)의 의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인류의 시원문명국가인 이 환국은 약 5900여 년 전, 기후변화로 인해 나라를 이루고 있던 9부족들의 일부가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 때 환국의 마지막 환인이신 ‘지위리’ 환인으로부터 정통성의 상징인 천부인 3개를 받은 환웅께서 문명 개척단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백두산)에 오시어 신단수 아래 도읍을 정하고 신시를 열게 되었으니 이것이 신시배달입니다.
 
 이때 환웅천황은 하늘에 천제를 드리며 나라를 개국하는데, 이 날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3일  개천절 입니다. 신시배달은 환국의 광명사상을 그대로 계승을 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개천(光明開天)의 3대 정신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며 156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배달국을 우리는 진정한 한민족사의 기원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개천절 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이 아닌 신시배달의 건국일이며, 단군의 건국이념으로 알고 있는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광명사상 또한 배달국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제사 올리는 천제문화
 배달국은 인류 시원문명국가인 환국시대 환인천제의 정통정신을 계승한 장자국으로서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천제의식을 통해 감사를 드리고, 신의 가르침을 받아 인간을 다스려왔습니다. 그것을 이신설교(以神說敎)라 하는데, 줄여서 ‘신교’라 부릅니다. 신교는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해온 종교로서 환국, 배달국 시대에는 신교나 배달도라 불렀으며 고조선 때는 풍류도라 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신라의 최치원은 화랑의 유래를 밝힌 ‘난랑비서문’에서 ‘우리민족이 닦아온 현묘한 도는 유불선 삼교정신을 모두 포함하는 풍류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시배달의 신교의 맥은 고조선을 거쳐 고구려로 전해졌으나, 당나라의 힘을 빌린 신라의 삼국통일을 계기로 더 이상 전해지지 못하게 됩니다. 대진국(발해)으로 이어진 한 맥도 대진국의 멸망과 함께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그 흔적은 남아서 이후 불교를 국교로 한 고려와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에서는 각각 ‘복원관’과 ‘소격서’를 두어 상제님께 천제(天祭, 太乙祭)를 올려왔습니다.
 
 역대의 제왕들은 제위에 오를 때 반드시 하늘의 상제님께 먼저 제사를 올렸는데, 한말의 고종임금께서도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위에 오를 때 원구단을 쌓고서 천제를 올려 하늘에 알렸습니다. 그 유적은 지금도 서울의 조선호텔 자리에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천제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신교문화 즉, 상제문화의 발자취인 것입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정갈한 곳에 정화수를 떠놓고 두 손을 비비며 하늘에 정성을 드리는 모습, 관아래 칠성판을 깔고서 그 위에 시신을 얹어 장례를 지낸 것 등도 모두 신교문화의 유산입니다.
 
 지배층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를 지내듯 평민들은 고을마다 제천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오곡이 풍성한 가을철에 수확을 하고나서 지신(地神)과 곡신(穀神) 그리고 상제님께 감사행사를 가졌습니다. 10월 상달에 지냈던 이 행사가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백제의 교천 그리고 삼한의 불구내 등입니다.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 그 뒤풀이로 음주가무의 풍류를 즐겼습니다.
 
 이런 관습은 오늘날의 추석명절 속에 그 자취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해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한 다음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나 씨름, 강강술래 등의 놀이를 통해 흥을 돋우는 풍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해는  개천절 과 추석이 연이어 있어 국내외 여행지를 찾는 사람이 많아 항공편 티켓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 합니다. 오랜만에 맞은 긴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이 땅에 나라를 열고, 하늘의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또 나의 뿌리 되는 조상님께 제사 올리던 그 정신마저 퇴색되는  개천절 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과 민족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올바른 역사관을 바탕으로 미래를 바라볼 때 비로소 스스로의 자긍심은 물론이요, 후손들에게도 더욱 떳떳하고 값진 재산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가 열린  개천절 을 맞이하여 선조들의 그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증산도 본부, 월간개벽 2006.10월호




 
 겨레의 뿌리를 마음에 되새기는 날
  개천절은 모든 국경일 가운데 으뜸이 되어야 할 날이다. 우리 겨레의 뿌리를 마음에 되새기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개천절은 모든 국정공휴일 가운데 가장 초라한 행사로 끝나는 날이다. 지금의 한국사람은 이 나라와 이 겨레 생긴 날보다 예수님, 석가님 탄생일에 더 큰 의미를 두며 그날은 온 나라가 법회와 크리스마스 행사로 들썩거린다.
 
 환웅, 단군 할아버지께서 아시면 섭섭하시겠지만, 당신의 후손들 대부분은 개천절을 쉬는 날 정도로 아주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 그 유래도 모른다. 그날 단군 할아버지를 기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소자출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심지어 이런 볼멘소리까지 한다.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며 여러 피가 뒤섞인 혼혈잡종이므로 단군의 직계후손이 아니라고, 그러니 시조(始祖)니 국조(國祖)니 따위의 말도 과감히 없애자고. 환웅할아버지 단군할아버지 찾는 것은 편협한 국수주의 발상이요,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있는 이 나라의 국민적 화합을 해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월드컵도 치르고 제법 국제무대에 설 만큼 나라 껍데기는 미끈해졌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셈이다.
 
 
 환웅천황께서 배달(倍達)이라는 국호로 나라를 개국하신 날
 ‘개천절’(開天節)은 실존인물이셨던 환웅천황께서 지금으로부터 5900년(=2002+2333+1565) 전 백두산 신시(神市)에서 배달(倍達)이라는 국호로 나라를 개국하신 날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이 배달겨레가 된 날이다. 지금도 배달겨레라고 부르지 않는가?
 
 10월(上月) 3일은 원래 단군 할아버지께서 지금으로부터 4335년(=2002+2333) 전에 조선(朝鮮)을 개국하신 날이다. 이날은 우리 겨레가 단군의 자손이요 조선민족이 된 날이다. 그리고 이날 단군성조께서는 조선 강역을 삼분(三分)하여 삼한(三韓: 韓國)이라 하셨으니, 우리 민족이 비로소 한국사람이 된 날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개천절은 10월 3일이 아니다. 개천절에 단군성조를 기념하는 것은 역사단절이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이 배달겨레가 맞다면, 정확히 말해서, 개천절은 환웅천황께서 인류문명을 개벽하신 날이며(開天立敎), 개벽정신으로 배달나라를 창건하신 날로 의미를 부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역사를 잃어버려, 배달국을 연 개천의 의미는 아예 사라져 버리고 다만 단군성조의 조선 개국의 의미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 기록 속의 개천(開天)이란 말을 통해, 우리의 선조들이 개벽원리를 일상 속에 생활화했음을 확인해 보자.

 『태백일사』 「환국본기」에 이르기를, “대저 일체의 천지만물은 ‘개벽운동’으로 삶이 열리고, ‘진화운동’을 따라 삶의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며, 천지일월이 ‘순환운동’을 하여 만물이 존재할 수 있게 된다”(凡天下一切物, 有若開闢而存, 有若進化而在, 有若循環而有: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고 하였다.
 
 이처럼 태고적 우리의 선조들은 저 광활한 우주심연을 거닐며 인생의 본질적 의미를 깨우치셨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 고대의 어떤 민족이 이같은 인류보편정신을 나라의 창건이념으로 내걸었던가? 우리 선조들이 품었던 숭고한 이상을 우리 겨레가 재현하게 될 그날은 언제인가?

 글·유내윤(kifv-a@hanmail.net)
 
 
 개천(開天)의 뜻

 (출처: 조선 중종 15년 이맥(李陌)이 찬술(撰述)한 『태백일사』의 「신시본기」)

 개천(開天) - 성인을 보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개천’이다. 하늘의 뜻을 밝혀 역사의 새 시대를 열어줌으로써, 능히 만물의 질서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곧 이 세상이 하늘의 뜻(천리)과 부합되어 일체가 되는 것이다(虛粗同體).
 [遣往理世之謂開天, 開天故, 能創造庶物, 是虛之同體也]
 
 개인(開人) - 인간세상을 사랑하여 크게 발전시키려 하는 것이 ‘개인’이다.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열어주어 새 진리로 도덕을 세움으로써, 기강과 질서가 바로잡혀 세상일이 순환하게 된다. 이로써 육신과 함께 영혼이 성숙해간다(形魂俱衍).
 [貪求人世之謂開人, 開人故, 能循環人事, 是魂之俱衍也]
 
 개지(開地) - 산을 다스려 길을 내는 것을 ‘개지’라 한다. 땅을 개척하고 만물의 질서를 바로잡음으로써, 1년의 4시와 때에 알맞은 일을 지어서 세상일이 변화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개척의 삶을 통해 지혜를 함께 닦게 된다(智生雙修).
 [治山通路之謂開地, 開地故, 能開化時務, 是智之雙修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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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샤를루아 市에 거주하는 10살 소녀가 아기를 출산했다고, 28일 해외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기의 아빠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13살 소년.

산부인과 의사 로버트 셰프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녀와 어머니는 전혀 임신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소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에 시달렸다. 또 체중이 불었다. 소녀의 어머니는 다이어트를 시도하도록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체중은 줄지 않았고 소녀와 어머니가 병원을 찾았을 때, 임신 9개월인 것이 확인되었다.

소녀와 어머니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으나, 출산은 순조롭게 이루어져 엄마보다 10살 어린 남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

13살의 학교 친구인 ‘아빠 ’도 병원을 여려 차례 찾았다. 소녀의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으며, 난데없이 태어난 ‘손자’를 직접 기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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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단가에 대한 얘기가 많네요...
 
실제로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좀 하락한 부분이 보입니다.
 
지난달 클릭당 200~150원정도가 되었지만 이번달 130~60원 정도를 보여주는듯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달러의 환율 하락
예전에 구글광고가 최적가가 70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저가가 80원이 되었습니다.
환율이 예전에 비해 약 10%정도 하락했습니다.
그만큼 사용자에게도 적에 돌아오는 부분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구글 애드센스 사용 홈페이지의 증가
홈페이지가 증가하면 그 만큼 가격 경쟁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같은 키워드로 적용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그만큼 늘어나는것이죠.
그 이유로 최저가의 광고가 달릴 확율이 더욱 높아집니다.
 
3. 광고의 위치 설정
예전에 테스트겸 한두개씩 달던 홈페이지, 블로그가 많았으나 요즘은 적극적으로 달고 있습니다.
애드센스는 한 페이지에 여러개가 걸릴경우 자체적으로 경쟁을 하게 됩니다.
HTML코드상에 제일 위에 있는 광고가 가장 비싼 광고가 됩니다.
하지만 제일 위에 클릭하기 힘든 광고를 달고 아래에 여러가지 많은 광고를 달면 단가는 떨이지게 됩니다.
 
4. eCPM의 하락?
eCPM의 기준을 잘못 생각하시는분들이 많습니다.
다른분도 말씀하셨듯이 eCPM가 클릭당 단가의 기준이 아닙니다.
1000번의 페이지뷰가 일어났을경우 해당 금액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만약 2만번의 페이지뷰가 있고 eCPM가 0.1 일경우 2달러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클릭수만 증가했는지 페이지뷰도 늘어나고 클릭수도 늘었는지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5. 무효클릭의 증가
애드센스에서 무효클릭도 클릭 숫자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무효클릭으로 처리되면 클릭수는 많더라도 가격은 고정됩니다.
그래서 클릭수에 비해 가격이 떨어져 보일 수 있습니다.
 
6. 초기 클릭의 비중
애드센스는 초기 적은 클릭이 있어났을때 클릭당 수익을 좀더 많이 주는듯합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초기 한두번 클릭의 금액과 나중에 수십번 클릭이 있어났을때 단가의 차이가 일어납니다.
광고로 인한 실적 전환을 평가하여 광고비가 제측정 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부분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7. 애드워즈(광고주) 기능의 추가
애드센스의 기능이 늘어난것처럼 애드워즈의 기능도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사이트의 광고를 피할 수 있고 특정단어가 들어간 페이지도 피할 수 있습니다.
최저의 가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위한 여러가지 방법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환추적기능도 발전하여 어떤 키워드가 실제로 광고주에게 도움을 주는지 파악하여 단가도 조절하고 있습니다.
대형사이트에게 고급 광고가 달리게 되고 그에비해 점차 블로그같이 실적이 낮은곳은 광고비가 떨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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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관리사

Business 2007. 10. 1. 22:54


유통관리사 전망및 취업


1. 유통관리사의 전망

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교통이 발달되면서 유통산업도 대형화, 전문화되어 가고 있다.

EK라서 각 유통업체 및 물류업체에서 이처럼 대형화, 다양화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물류관리의 합리화를 꾀하여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판매업무의 효율성을 이루기 위해 유통 분야의 전문가로 국가공인 자격시험에 합격한 “유통관리사”를 유통관리책임자로 채용하여 경영지도 및 유통실무, 종합적인 관리업무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유통 합리화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통. 물류회사의 종합적인 관리책임자인 “유통관리사”는 백화점,대형할인점, 농·수산물 도매시장,의류,보석,운동용품, 서적, 가전제품, 가구, 컴퓨터, 한약재, 포목, 자동차, 신발, 사무용품, 완구, 철강제품, 목재, 화훼단지, 축산물, 의약품 등의 각 도매시장에서 책임자로 근무할 수 있어 취업전망이 밝을 뿐만 아니라 자격증 취득과 동시에 유통관리 간부직원으로 근무할 수 있어 취업을 희망하는 분들과 좀더 낳은 대우와 보수를 받기 원하는 분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2. 유통관리사의 취업


 각 대기업의 물류관련 부서
 각 공장의 물류관련 부서
 전국의 수많은 백화점
 전국의 수많은 대형 할인점
 농 · 수산물 유통공사
 농 · 수산물 도매시장
 농 · 수산물 공판장
 각 지방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특산품 판매장
 농 · 수 · 축협의 유통관련 부서
 전국의 수많은 물류센터
 각 택배회사 및 물류 운송회사
 공항 · 부두 등의 물류 선적 및 하역부서
 고속버스 터미널의 물류부서
 의료 · 보석 · 운동용품 · 서적 · 가전제품 · 가구 · 컴퓨터 · 한약재 · 포목 · 자동차 · 신발 · 사무용품 ·
   완구 · 철강제품 · 목재 · 화훼단지 · 농축산물 · 의약품 등의 도매시장에서 유통관리 분야 및 물류관리
   분야의 책임자로 근무

응시자격
1급 :
- 유통분야에서 7년 이상의 실무경력이 있는 자
- 유통관리사 2급 자격을 취득한 후 5년 이상의 실무경력이 있는 자
- 중소기업진흥 및 제품구매촉진에 관한 법률 제31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경영지도사 자격을 취득한 자로서 실무경력이 3년 이상인 자

2급, 3급 : 제한없음

시험과목
  시험방법 시험과목 출제형태 시험시간
1급 필기시험 * 유통경영
* 물류경영
* 상권분석
* 유통마케팅
* 유통정보
과목당 5문제이내 40분
2급 필기시험 * 유통물류일반관리
* 상권분석
* 유통마케팅
* 유통정보
객관식100문항 100분
3급 필기시험 * 유통상식
* 판매 및 고객관리
객관식75문항 80분
매과목 100점 만점에 과목당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 합격

가점혜택
유통관리사 1급
유통산업분야의 법인에서 10년이상 근무하거나 2급자격을 취득하고 도.소매업을 영위하는 법인에서 5년이상 근무한 자에 대해 5점 가산
유통관리사 2급
유통산업분야에서 3년이상 근무한 자로서 산업자원부가 지정한 연수기관에서 40시간이상 수료 후 2년이내 2급시험에 응시한자에 대해 10점 가산
유통관리사 3급
유통산업분야에서 2년이상 근무한 자로서 산업자원부가 지정한 연수기관에서 30시간이상 수료 후 2년이내 3급시험에 응시한자에 대해 10점 가산

유통관리사 요점정리 및 기출문제는 "유통관리사를 사랑하는 모임"

유통관리사 시험일정
연도 회차 구분 등급 원서접수 시험일 발표일
인터넷접수 방문접수
2007 1 필기 1,2,3 2007.05.23~2007.05.29 - 2007.06.17 2007.07.10
2007 2 필기 1,2,3 2007.10.02~2007.10.09 - 2007.10.28 20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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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관리사

Business 2007. 10. 1. 22:43


질문 1

물류관리사 자격증은 국가가격증 맞습니다.

건설교통부에서 주관하여 한국물류협회 주최로 매년 1회 시험을 실시하고있습니다.

학교만 졸업한다고 취득할수 있는 자격증은 아닙니다.

전남대와 여수대에 물류학과가 있어서 거기에서 이론적인 지식은 배울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을 쳐서 과목별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 맞으셔야 합격입니다.

시험에 관한 과목명이나 시험일자 등은 검색창에 물류관리사만 치시면 많이 나옵니다.

질문2

솔직히 말씀드리면 혼자 독학으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적게는 2~3개월 길게는 4~5개월이면 취득가능합니다.  물론 과목별로 이해정도가 차이가 있겠지만 책을 2~3번 보신다고 생각하시고 공부하시면 무난히 취득하실겁니다.

2006년까지는  물류관리론, 보관하역론, 화물운송론,물류관련법규 4과목이었는데 2007년 이번해부터는 국제운송론인가 ? 국제 머시기가 하나 추가되서 5과목 되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검색창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질문3

물론 물류관리사 자격증을 우대해주는 기업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한솔csn / KNL물류/ 로젠/ CJ GLS/ 한익스프레스/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 등등..수도없이 많습니다.

물류업계에서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합니다. 처음엔 하역담당하는 기업도 있고 바로 자재관리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물류유통업계는 자격증이나 스팩보다는 경력을 우선시 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경력이 있어야 편하게 일 하실수 있습니다.

자격증을 가지고 취직을 하시게 되면 수당이 조금 더 많이 받고 진급시 이점이 있기도 합니다.

질문4

물류관리사 자격증만 가지시고 취직 하실 생각은 하지 않으셨음 합니다.

물류업계로 취직을 하고 싶으시면  지금 님의 나이가 어리시다면 각종 아르바이트로라도 경력을 많이 쌓으시기 바랍니다.

자격증 하나로 취직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경력이 없으시면 스팩이 높아야 합니다.

물론 물류업계에서는 그다지 고득점의 토익점수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700~800정도의 영어 실력과 다른 컴퓨터활용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셔야만 취직이 수월해 집니다.

질문5

자격증 시험에서 나이제한 은 없습니다.저도 시험볼때 아저씨들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이 제일 어린거 같았습니다.(제나이 20대 중반)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서 물류관리사에 대해 좋게 이야기 하고있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게 밝지 않습니다. 외국에선 물류관리사가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아 연봉순위 3~4위를 기록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그건 외국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선 맞지 않습니다. 이점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자격증은 취업을 위해 약간의 도움이 되는 것일뿐 그것에 너무 매달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자격증 취득을 하시길 원하신다면 교제를 몇십만원 주고 사기거나 동영상강의 등 다른 부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책을 팔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기에 당하시지 마시고 "로지스틱스 21"이나 "한국물류협회"사이트 들어가셔서 교재를 한번 보시고 구입하시기 바랍니다(위에 언급된 사이트 홍보는 절대 아닙니다. 특별히 다른 교재들로 없고 합격하신 분들이나 저도 다 거기서 거기인 교재를 보고 공부한것입니다. 그냥 참고하시길..)

ㅇ 인 터 넷 : 2007년 5월 7일~ 5월 21일, 18:00 까지
공식사이트 : http://cpltest.kol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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